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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루었다.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신 것은 구원의 완성이 아니다. 자신이 예언된 구세주이심을 낱낱이 증거 해 보이신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사도들의 역할이다. 복된 소리를 전하는 자의 발이 산을 넘고 들을 지난다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
 

이단연구가 원로목사 정정조

서설

“다 이룬 내용은, 다른 것이 아니라 구원이다.”라는 설이 많이 유포되고 있다. 

흔히들 말하기를 예수께서는 구원을 완성하시고 성령께서는 그 구원을 우리에게 적용시킨다고 한다. 이 말에서 구원의 완성이란 한 마디로 해서 구원의 방법이나 도리라고 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그 구원의 방법을 다 이루셨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이 말은 불완전하다. 우리가 오해하기 쉬운 것은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공로가 전혀 없다는 말과 예수께서 홀로 구원을 이루셨다는 말을 혼동하게 되는데 있다.

어떤 이들은 완성된 구원을 그 구원의 대상자가 동의해야만 된다는 이들도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구원에는 동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이 필수이다. 필수의 믿음이란 동의도 아니고 강력한 요구도 아니고 찬성도 아니다. 그것은 수용이다. 동시에 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공로나 동의도 필요치 않으시고 협력은 더더욱 불필요하시다. 그렇다고 해서 믿는다고 말하기만 하면 구원이 하늘에서 신자의 머리위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구원에서 인간의 아무 행위도 요구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해서 단지 인간은 영원토록하나님께 신세만 지고 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명확하게도 구원 그 자체는 아니다.

구원의 방법은 구약시대 율법에서 내내 보여준 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어 제물이 되어 그 피와 살을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께 드려야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제사법에 적시한 대로 죽으셔야 했다.

개인이 자기를 위하여 제사를 드리는 번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와 화목제의 경우에는 그 당사자가 제물을 잡는다. 조석으로 드리는 상번제와 매 안식일과 절기에 드리는 국가적 제사에서는 제사장의 지시와 감독 하에서 레위인들이 제물을 잡는다.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자살하여 자기 피를 제물로 드리는 것이 아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에 의하여 살해당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온 백성들을 위한 제물이 되는 것이다. 

아직 죽기 직전인데, 제물로 드려지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십자가상에서 구원이 완성되겠는가?

어떤 분은 잠시 후를 내다보시고 미리 말씀하신 것이라고 둘러대기도 한다. 마치 이제 구원을 위하여서는 더 이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지 않다는 의미에서 그런 말씀을 미리 하신 것이라는 주장인 것이다.

본문 살피기 / 이제 본문을 다시 한 번 선입견 없이 자세히 읽어보자.

처음으로 되돌아가 보자.

예수께서는 “다 이루었다.”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셨다.

무엇을 다 이루셨나?

[요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이 말씀은 그 앞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전문을 다 싣는다.

[요19:28~30]

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시 69:21) 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사람들이 쓸개를 탄 신 포도주를 해융에 적셔서 입에 대어주었다. 그래서 신포도주를 입에 대시고는 영혼이 떠나가신 것이다.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성경의 어떤 것을 응하게 하려 하셨는가? 

해당 구약성경은 시편 69편 21절이다.

[시69:19~21]

19 주께서 나의 비방과 수치와 능욕을 아시나이다. 나의 대적자들이 다 주님 앞에 있나이다.

20 비방이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2)근심이 충만하니

불쌍히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긍휼히 여길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

심히 병이 되니 21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

같은 목적으로 기록된 성경을 또 찾아보자. 

예수께서 겟세마네에서 잡히실 때 베드로가 칼을 휘둘러서 제사장의 종 말고를 머리 위에서 내려쳤다. 그런데 너무 서둘다보니 나머지 약간 빗나가서 그의 귀를 잘랐다. 예수께서 만류하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마26:53~56]

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54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55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칼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56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 하니라.

한 가지 더 살펴보자 / 믿게 하려고

[요13:18]

18 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시41:9)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19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

1. 만일 그렇게 하면

<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 >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나님의 아들이 메시아로서 세상에 오셨으나 사람들은 푸대접하였다. 그 정황은 복음서 마지막 부분에서 자세히 기록하고 있었다. 특히 요한은 메시아로서의 나사렛 예수의 증거를 구약성경에서 낱낱이 찾아내어 기록하고 있었다.

그 예언들은 남김없이 다 이뤄져 남은 것이 하나도 없게 되었다. 예수께서 아직 목숨이 남아 있는 동안에 자신이 구약성경에서 예언한 메시야임을 낱낱이 드러내셨다. 그런 메시야를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 쾌재를 불렀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숨이 붙어 있는 한 자신이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이었음을 낱낱이 증거 하시려고 애쓰셨고 또 그렇게 하셨다. 성부께서도 그의 아들을 구세주로서 입증해 주시기 위하여 아들이 숨지신 이후에 하나하나 예언된 대로 이루어져가도록 섭리하셨다.

그 아들을 창으로 찌르게 하시고(슥12:10)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않게 하시고(요19:36)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고(시16:10) 음부에 버림을 당하지 않게 하시고(시16:10)그 아들을 위하여 부활이라는 전대미문의 대 역사를 이루셨다.

오늘날 많은 메시아 형 이단들은 아무도 자기가 구약에서 예언된 그 메시아라고 감히 말하지 못하고 단지 자기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느니 첫 메시아가 실패했다느니 하고 엉뚱한 소리나 늘어놓는다. 그들을 위하여서는 증거 해 줄 예언이 하나도 남겨지지 않고 나사렛 예수께서 다 이루시었으니 그들은 가짜가 틀림없다.

뿐만 아니라 구원의 사역에서 사도들을 참여시키셨다.

[딤전 3: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이제 확실해졌다. 

십자가상에서 이루신 모든 것은 구원 그 자체가 아니라 나사렛 예수가 메시아임을 예언한 구약성경의 모든 예언을 낱낱이 다 성취시킨 것이다. 나머지는 부활 후 40일 간의 사역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제 결론을 내리자.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신 것은 구원의 완성이 아니다. 자신이 예언된 구세주이심을 낱낱이 증거 해 보이신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사도들의 역할이다. 복된 소리를 전하는 자의 발이 산을 넘고 들을 지난다(나 1:15, 롬 10:15).

십자가상에서는 다 이루었다고 하셨던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두 번째 찾아가셨을 때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것이 있었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은 아직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 남아 있었다.

뿐만 아니라 구원의 사역에서 사도들을 참여시키셨으며 복음을 받는 모든 신자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하게 된다. 그래야 새 생명으로 다시 나며 마지막 날에 몸의 부활로 영생에 들어간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구원의 대상자가 구원을 받는 데까지이다.

[딤전 3: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예수께서는 참고 견디며 애써서 기록된 많은 것들이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 하셨고 성부께서도 깊이 개입하여 섭리하시며 부활까지도 이루어주셨다. 남은 것은 사도들의 몫이다. 그것은 부활과 죄 사함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모든 족속에게 전파되는 일이다(눅24:46, 47).

[눅24:44]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4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고 하셨는데 아직 다 이루어지지 않고 남은 것이 있었으니 부활과 복음의 전파를 땅 끝까지 전하는 일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었다. 부활은 하셨지만 승천하시기 전 주와 함께 마지막으로 식사를 한 사람들에게만 증거 되었었다.

십자가상에서 이루신 모든 것은 구원 그 자체가 아니라 나사렛 예수가 메시아임을 예언한 구약성경의 모든 예언을 낱낱이 다 성취시킨 것이다. 나머지는 부활 후 40일 간의 사역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첫 구원 (후보자)들의 무리들이었다. 그리고 땅 끝까지의 복음전파는 오순절에 능력이 입혀진 후부터였다.

만일 십자가상에서 구원의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고 성령의 적용만 남았다면 위의 본문은 필요하지 않다. 예언된 것이 아직 다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이 남아 있었고 그것들이 다 이루어져야 예수 그리스도의 일이 완료되는 것이다. 그 날은 곧 재림의 날이다.

2. 십자가를 포함하는 성육신 전체로서 이루신 것은 구원의 근원과 모범이다.

(1). 완성된 구원이 아니라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심

[히5:8~10]

8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 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일반적으로 구원론이 하나님의 선택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에만 집중되어 있다. 십자가만을 너무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어 죽으심으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다고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숨이 끊어졌을 때 성전 휘장이 찢어졌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피를 가지고 그리로 성소에 들어가셔서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다. 여기까지가 예수께서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심이다. 그러니 영원한 제사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구원이 완성되었다는 말은 할 수 없다.

[히9:12, 14]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2). 구원의 모범

복음을 받는 모든 신자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하게 된다. 그래야 새 생명으로 다시 나며 마지막 날에 몸의 부활로 영생에 들어간다. 성경이 말하는 정당한 구원론은 구원의 대상자가 구원을 받는데 까지다.

[고후5:14~17]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갈5:24]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는 구원의 모범으로서 죽으시고 묻히시고 부활 승천하셨다. 예수께서는 그 부활이 사도들과 신자들에게 믿어지시기까지 부활 후에도 지상에서 40일간을 계속하여 사역을 하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구원의 모범이란 해석상의 모범적 해석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람으로 오셔서 우리와 동일하게 고난을 받으시고 온갖 핍박 속에서도 온 백성들을 위하여 참고 견디시며 가난 한 자와 아픈 자를 돌보시며 핍박하는 자에게 복음을 감추지 않으시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어 마침내 목숨까지도 아기지 아니하셨으니 어찌 모범이 아닐 수가 있는가?

주께서는 우리에게 명하신다.

나를 따르라고

(마8;22, 9:22, 19;21, 막2:14, 10:21, 눅5:27, 9:59, 18;22, 요1:43, 12:26, 21:19)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신 것은 완성된 구원이라기보다는 구원의 모범 같은 것이다. 우리는 그 모범을 따라서 함께 죽고 함께 살면 되는 것이다. 이 죽음과 삶의 동참은 믿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써 믿음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흔히 이신득의를 논하는 이들이 믿음이 어떤 것인지를 말하지 않는 것을 본다. 이는 건전한 논의를 위하여서는 불행한 일이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란 듣고 믿어 신앙고백 하여 교인이 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롬 6: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딤후 2:11]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성령께서 구원을 믿는 자에게 적용시킨다는 말은 구원의 강제적 증여가 아니다. 조건부 증여도 아니다. 물론 유상증여는 더욱 아니다. 성경은 값없이 사서 먹으라고 말한다. 값은 없으나 사야한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사 52: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값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

값없이 팔렸다는 말은 자의적으로 팔려갔다는 말이다. 그러나 일단 팔려갔으니 자기 힘으로는 되돌아올 수가 없다. 그래서 돈은 아니지만 속량은 해야 한다. 따라서 속량절차만 밟으면 이제는 자기 의지만 남은 것이다. 이것이 돈 없이 사는 것이다,

[사 55: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속량의 대가가 무가치해서가 아니라 너무너무 크고 커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지불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공로가 있다면 그것은 다만 무능일 뿐이다. 하나님께 공로가 있다면 당연히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이다.

[요3:16]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래서 일만 데나리온의 빚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갚아주신 것이다. 우리는 그 모범을 따라서 100데나리온의 빚진 자를 용서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사랑이 없고 욕심이 가득한 이들은 절대로 100데나리온을 포기하지 못한다.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용서받은 것이 무효 되고 더 큰 벌을 받는다.

[마 18:28]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마6:13~15]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14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믿음의 성장과정을 보면 첫 믿음은 순진하기는 하지만 소원인지 믿음인지 구별이 되기 어렵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마침내 온전한 믿음으로 자라게 된다.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소원이며 진정한 믿음이며 사랑으로 넘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 구원하실 대상자가 복음을 믿을 때에 성령을 주셔서 거듭나 새 사람으로 다시 나게 하시고 연단하셔서 능히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위로는 하나님을, 아래로는 이웃을 사랑하게 하시니 사람에게도 알려지어 전도도 잘 되고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게 된다.

이단연구가 원로목사 정정조

김문제  munjett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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