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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을 조작하는 사람들가장 중요한 것은 이단연구가들이 이단을 조작하는 일이 있다면 이단연구의 필요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인규

  진용식목사는 한교연을 통하여 세이연의 이단성에 대한 세미나를 하겠다고 밝혀왔다. 필자에 대한 이단성은 다음의 네가지라고 하였는데, 이미 세가지는 진용식목사가 합동 이대위원장에 있을 때에 필자를 규정한 내용과 동일하다. 왜 진용식목사는 동일한 내용을 한교연에서 세미나를 통하여 다시 다루어야만 하는지 의문이며, 이미 필자의 소속교단인 감리교단에서 4차에 의한 조사 후에, 이단성의 문제가 아니라 신학적인 용어의 표현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었던 문제이므로 교단 자체에서 지도하겠다고 밝힌 내용이다. 이단연구가라는 사람이 필자가 하지도 않은 말을 조작하여 이단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대부분의 이단연구가들은 이미 알고 있지만, 필자의 문제보다 오히려 진용식목사의 계시록과 구원론은 더 위험하고 심각한 이단성이 있다고 보여지는데, 자신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공개세미나를 통하여 자세하게 밝힐 생각은 없는가?    

1. 특별계시

아래는 신사도운동의 정체와 비판이라는 책에서 필자가 쓴 계시에 대한 내용이다. 그 책을 그대로 이곳에 옮겨 본다.

계시의 종결성       

계시에는 일반계시와 특별계시가 있다.

특별계시는 (1) 현현 (2) 전언(傳言) (3) 기적 등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물론 오늘날도 특별계시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성경도 특별계시이다. 대부분의 일반 교회에서는 계시의 종결성을 주장하는데, 이러한 주장은 직통계시의 종결성을 뜻한다. 그러나 혹간 사람들이 어느 성경에 계시와 예언이 끝났다는 구절이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러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계시의 종결에 대해서 이해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계시의 종결이라는 주장은 앞으로 계시가 모두 끝났다는 뜻이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러한 계시나 예언은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성경적인 검증을 받아야만 한다는 뜻으로 이해를 하면 확실하다. 지금 수많은 이단들이나 사이비집단의 교주들은 대다수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들이 모두 성경과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그 계시를 거짓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여 계시나 예언은 성경적인 내용을 벗어날 수가 없다. 만일 계시나 예언이 성경과 벗어나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은 변치 않는 속성을 가지신 분이 아니라, 오히려 두 말로 식언하시는 분이 되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1) 성경은 객관적인 계시이며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의 객관성과 완전성에 대해서 모든 기독교인들은 인정을 하여야만 한다우리의 구원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성경만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그의 신앙은 재점검을 받아야만 할 것이다. 다시 말하여 계시나 예언은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분별해야 하지만, 성경 말씀은 이미 사실이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온전히 입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성경이 없던 시대에는 예언과 계시가 필요하였지만성경이 있는 시대에는 거꾸로 예언과 계시가 성경으로 검증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이다바꾸어 말하면 성경의 객관성과 성경의 완전성을 인정한다면기록된 성경만으로 충분하다는 뜻이 된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히 1:1,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라는 본문에서 예수의 말씀은 곧 신약성경말씀을 뜻하며, 신약의 기록이 곧 하나님의 최종적이며 온전한 계시임을 증거하고 있다. 신약 계시에 추가할 또 다른 계시가 더 이상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즉 예수께서 궁극적인 계시(final revelation)가 된다는 것이며모든 성경과 선지자들의 예언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나신 하나님의 계시로 성취되어진다

사도요한도 계시록 마지막 부분에서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말하고 있다(계 22:18-19).

이것 역시 계시록에 기록된 하나님의 종말적 예언의 말씀이 충분하다는 것을 증거한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3:15).

성경은 능히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다는 것이다. 즉 성경의 완전성객관성을 인정한다면더 이상의 계시나 예언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곧 그것이 계시의 종결성이다만약 또다른 계시가 필요하다면 성경은 불완전한 기록이 되어진다.

필자가  쓴 글은 전체적으로 성경 외에는 특별계시가 없으며, 모든 검증은 성경으로 확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의 글 외에도 3-4페이지를 더 썼는데, 모두 성경의 유일성과 성경의 종결성에 대한 내용이다. 필자는 책 앞에서 “오늘날도 특별계시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라는 한줄을 쓴 이유 때문에 이단성이 있다는 규정을 받았다. 

필자가 “특별계시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주장은 작통계시가 아니라, 기적과 이사를 말한 것이다. 

필자는 수많은 컬럼을 써왔지만, 단 한번도 하나님의 현현이나 하나님의 음성과 같은 직통계시를 동의한 적이 없다. 더욱이 그 책은 신사도운동의 계시와 예언을 비판하기 위하여 쓴 책이다.

루이스벌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루이스벌콥도 특별계시와 성경을 동일시하지 않았으며, 그가 말한 특별계시는 “하나님의 자기 전달의 연속”을 뜻한다.

 특별계시와 성경은 모든 면에서 동일하다고 말할 수 없다특별계시란 말은 언제나 똑같은 뜻으로 사용되지 않는 것이다그것은 하나님의 자기 전달의 연속을 뜻하는 것이지만또한 성경의 칭호로 사용되기도 한다.”(루이스벌콥, 기독교신학개론, 45쪽)

루이스벌콥이 말하는 특별계시라는 용어 자체의 개념이 다른 것이다.

필자는 루이스벌콥의 견해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루이스벌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진용식목사에 의하면 루이스벌콥은 이단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신현예언이적에서 사람에게 임하시며 또한 이 임하심은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에서 그 최고점에 도달하고 있는데그것은 돌이켜 교회에서의 성령의 내주로 인도하고 있다. 계시 전체가 향해 움직이는 신적 텔로스는 계시록 21:3에 묘사되어 있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며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저희와 함께 계셔서”(루이스벌콥 조직신학 상권 159-160쪽)

물론 필자는 동의하지 않지만, 아래와 같은 조직신학자들도 있다. 특히 기적과 이사를 계시의 방편으로 설명하는 조직신학자들은 많다.

 신유의 이적을 통해서 자기를 계시하고 있다. 신유의 이적은 구약시대부터 시작해서 신약시대에 와서는 더 강렬하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기적은 엘리야, 엘리사, 예수님, 예수님의 제자들, 교부들, 로마카톨릭교회, 그리이스 정교회, 그리고 개신교 등에서 지금까지 계속 기록이 나타나고 있다. 지금도 이러한 신유의 이적은 수없이 일어나고 있다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의도에 따라 지금도 기적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고 계시며이와같은 사실은 수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간증을 통해서 증거되고 있다”(이성주, 조직신학 1권, 성지원, 127-128쪽)

 합리주의자들은 초자연적 계시를 부정하며따라서 기적을 부정한다바르트의 경우는 자연계시를 부정하며 역사적 계시도 부정한다또한 초자연적인 계시도 부정하고 만다즉 지상에서 일어나는 자연적인 일 혹은 자연적이 아닌 기적적인 일들 그 자체가 말하자면 하나님의 계시라고 인정하지 않는다그와 같은 의미로는 역사적 계시라든가 초자연적 계시로서 구별하고 있다.”(교의신학 1권, 김준삼, 34쪽)

진용식목사는 자신의 요한계시록 강해에서 계시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계시는 그리스도를 보는 것”(계 1:9-16)이라고 하였다. 또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계 1:1) 계시는 개인적인 것이다

1) 계시는 주관적 체험으로 되는 것이다

2) 구원의 방법도 계시적 경험이다

꿈 해석이 필요하고 해몽의 은사가 필요하다

진용식목사야 말로 잘못된 위험한 직통계시관을 갖고 있지 않는가?

2. 필자가 예수님이 자기 피를 들고 하늘성소에 올라가 제사를 드렸다고 했다는 조작에 대해서

필자는 그런 주장을 말한 적이 없다. 그러한 주장은 메튜헨리의 주장이다.

소위 이단연구가라는 사람들이 이런 조작을 한다는 자체가 놀랍다.

필자는 기이협에서 자체적으로 김성로목사에 대한 문제점을 논하기 위한 세미나를 하였는데, 히브리서에 대한 다양한 주석적 견해를 소개하는 가운데에서 나온 것일 뿐이다. 필자는 그날 마틴로이드존스, 메튜헨리, 권성수교수, 톰슨주석, WBC 주석, 호크마주석등 약 10여개의 주석적인 견해를 소개하면서 이와 같이 다양한 견해가 있다고 말하였다. 아래는 메튜헨리의 주석이다. 그날 기이협에는 약 20명의 이단연구가들 증인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확인을 하여도 곧 알 수가 있을 것이다.

메튜헨리 주석 히 9:12

- 1)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11절). 구약이 장래 나타날 것에 대한 그림자라면 신약은 구약의 성취이다. 약속들이 성취될 때, 즉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와 그의 제사장직에 의지할 때 장래의 모든 좋은 일들은 성취될 것이다. 모든 좋은 일이란 곧 하늘나라의 상태로 되는 것으로 거기서는 구약과 신약이 모두 성취될 것이며 그때의 영광의 상태는 은혜의 상태를 온전케 할 것이다.

2) 그리스도는 '더 크고 온전한 장막'의 대제사장이다(11절). 그의 몸, 곧 그의 인성은 복된 처녀에게 임하신 성령에 의해 잉태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새로운 방법, 즉 새로운 창조 질서인 것이다.

3) 우리의 대제사장인 그리스도는 구약시대의 대제사장이 소나 염소의 피를 들고 지성소에 들어간 것과는 달리 자신의 피를 들고 하늘에 들어 가셨다

4) 우리의 대제사장은 단번에 천국에 들어가셔서 영원한 구속을 얻으셨다

진용식목사는 계시록 강해에서 예수님이 지금도 하늘성소에서 속죄사역을 하고 계신다고 말했다. 

이것은 십자가에서 속죄를 이루신 예수님을 부정하는 심각한 이단성이다. 진용식목사는 이것에 대해서 중보역할을 하고 있다고 변명을 했지만, 중보라는 단어는 그의 계시록 강해에 전혀 나오지 않는다.

성소 안에서 예수님은 일곱 촛대 앞에서 대제사장의 사역을 하고 계신다

대제사장이 되시기 위하여 승천하셨다.

주님은 지금도 교회에 말씀을 주신다

대제사장의 사역은 속죄사역이다

- 예수님은 지금도 속죄사역을 하고 계신다.

3. 속죄와 구속에 대한 주장에 대한 조작

이것도 필자가 쓴 글이 아니다. 이것을 설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말한 것으로 조작을 하고 있다

그리고 본문은 기이협에서 김성로목사에게 잘못된 점을 수정하도록 제의한 내용이다. 기이협에서는 십자가에서 죽음과 하늘성소의 입소가 분리된 사건이 아니라 동시에 일어난 하나의 사건으로서, 십자가 죽음으로 인류의 속죄사역이 이미 완성된 것으로 보아야 하고, 부활은 큰 프레임에서 구속의 성취라고 보아야 한다는 점을 설명한 것이다.

첫째 필자가 쓴 글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필자가 썼다고 조작을 하였으며, 김성로목사에게 수정을 제의한 내용을 김성로목사와 동일한 주장을 했다고 조작을 한 것이다.

 (기이협 제의서)

이러한 내용의 글들은 자칫 두 번의 제사로 오해를 살 수 있는 것으로서 주님이 부활하셔서 하늘성소에 들어가서 피를 드렸다는 것은 성경에 없는 개념입니다. 즉 주님이 부활하신 다음에 하늘성소에 들어가신 것이 아닙니다. 김성로 목사님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그 피를 드리고 부활하신 다음에 다시 하늘성소로 들어가신 것과 같이 시간적인 순서의 착각을 하신 것 같습니다.

또 별지에 첨부한 내용처럼 ‘주님의 십자가에서 이루신 속죄’(vicarious atonement)와 ‘부활하셔서 구속하심’(redemption)의 용어적인 개념을 명확하게 구별하지 못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것은 부활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용어적인 오해가 있었다는 판단입니다. 로마서 4:25의 “우리의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십자가 사건) 우리의 의롭다하심을 인하여 살아나셨느니라(부활 사건)”는 말씀을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4. 2018년 10월 감리교 총회의 공식발표

기독교대한감리회에서 신학교수 3명과 이대위원 3명이 필자를 4차 조사를 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이 발표하였다. 소속교단에서 이단성 문제가 아니라고 이미 규정한 것을 왜 다른 교단에서 다시 문제를 삼는가?

 “평신도 이단 연구가 이인규 권사의 이단시비

타 교단과의 신학적 논쟁으로 불거진 감리회 평신도 이단사역자 이인규 권사의 이단시비에 대하여 감리회 이단대책위원회 자체 조사 결과, 타 교단에서 문제 삼은 이단성 참여 금지는 이단성으로 볼 것이 아니며, 신학적 용어의 표현상 오해의 소지가 있었으므로, 이러한 신학적 미비 현상을 보완하기 위하여 감리회의 신학지도를 받는 것과 그가 활동 중인 평신도이단대책 협의회(평이협)에 감리회 소속 이단 전문위원을 자문위원으로 받아들여 지속적인 신학지도를 받는 것으로 하였습니다.“

5. 삼위일체 논쟁에서 조작

진용식목사가 그리스도는 여호와라고 주장하였다. 그 동기는 계시록 1:8에서 성부하나님이 아니라, 성자예수님이라고 말하기 위함이었다.

세이연에서 진용식목사에 대해서 양태론의 오해가 있다고 말하자, 진용식목사는 “예수는 여호와”라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세이연에서 비판한 내용은 “그리스도가 여호와”라고 한 것인데, 진용식목사는 “예수가 여호와”라고 말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예수가 여호와라고 말할 수도 있고, 예수가 여호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말해왔으며, 그 차이에 대한 성경적인 예도 제시하였으며, 삼위일체는 인격적인 측면과 본질적인 측면을 구별하여야 한다고 말해왔다.

필자가 비판한 내용은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메시아를 뜻한 직분적인 명칭이기 때문에 여호와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모두 빼버리고, 필자가 그리스도는 여호와가 아니라고 했다는 내용만을 부각시키며, 필자가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는 이단이라고 주장하였다.

더욱이 필자가 예수의 자존성을 부정했다는 주장까지 하였다. 필자는 예수의 자존성을 부정한 적이 없다. 다만 모든 신조와 조직신학은 예수를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하나님”으로 말하고 있으며, 그것을 말했을 뿐이다. 필자가 예수의 자존성을 부정하였다면, 니케야신조와 웨스트민스터신조, 루이스벌콥도 예수의 자존성을 부정하였는가?

예수를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하나님이라고 하여 피조물이라고 하면 이단이며, 자존성을 부정하면 당연히 이단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단연구가들이 이단을 조작하는 일이 있다면 이단연구의 필요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니케야신조, 325년, 웨인그루뎀 역)

우리는 한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모든 세상이 있기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나셨으며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하나님이시다빛으로부터 온 빛이시요참하나님으로부터 나온 하나님이시다그는 피조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셨다

(웨스트민스터 신조, 웨인그루뎀 역)

웨스트민스터 제2장 3. 하나님은 우일무이하시다. 그런데 이 하나님은 동일한 본질과 능력과 영원성을 공유하시고 계시는 3 위격이시다. 즉 하나님아버지는 그 누구로부터 태어나셨거나 그 누구에게서 유래한 것이 아니다. 성자는 영원 전에 성부에게서 탄생하셨고성령은 영원 전에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유래하셨다.

(루이스벌콥, 같은 책, 318쪽) C. 성자의 영원적 생성 : 성자의 인격적 성질(고유성)은 그가 영원히 아버지에게서 태어나시며(간단히 파생이라고 부름)또한 성부와 함께 성령의 파송에 참여하신다. 성자의 생성(발생)에 대한 교리는 삼위일체의 제1위와 2위가 각각 부자관계를 갖는다는 성경적인 묘사에 의해 암시되고 있다성부와 성자라는 명칭이 전자에 의한 후자의 생성을 암시할 뿐 아니라 성자도 역시 반복적으로 독생자라고 불리고 있다.

세이연에서는 진용식목사의 계시록과 구원론에 대해서 공개토론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진용식목사는 지금 그대로 각자가 신문에 올리는 지상토론을 계속하자는 것이다. 세이연은 한 신문이나 특정한 홈페이지를 통하여 공개적인 토론을 하거나 또는 각각 신학자 동수를 초청하여 공개토론회를 열자는 것이다.

왜 이러한 토론은 외면하는가? 

진용식목사의 계시록과 구원론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이 두려운가? 

그의 계시록 강해에는 신천지와 유사한 비유풀이가 넘치고 있다. 

 

김문제  munjett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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