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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믿음 정이철목사의 재반론에 대한 반론 (1)“그 동안 김성로목사의 설교를 왜곡 편집하여 사악한 이단이라고 단정하며 주장한 자신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회개의 마음이 전혀 없는 반론인 것을 보게 된다.

정이철목사는 

1) 질문에는 대답도 안하고 피해 가며, 자기주장에만 강하다. 

2) Redemption(구속) 개념과 ‘atonement’(속죄)의 개념을 혼동하는 반 기독교 사상이며, 

3) 이단성만 무려 17가지를 소유하고 있다.    

2016년 11월 7일 정이철 목사가 춘천 김성로목사의 입장표명에 대한 글을 읽고 나서 재반론을 해 주셨다. 정이철 목사의 재반론을 보며 느낀 필자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그 동안 김성로목사의 설교를 왜곡 편집하여 사악한 이단이라고 단정하며 주장한 자신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회개의 마음이 전혀 없는 반론인 것을 보게 된다. 

필자가 그동안 많은 분량의 반론(글)을 통해 충분히 설명했건만, 여전히 정이철목사가 김성로목사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을 보니 놀랍기만 하다. 대체 필자의 반론을 제대로 정독했는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정이철목사는 김성로목사의 이단성에 대해 약 70편의 왜곡 주장들에 대해 필자는 5개의 반박문과 공고문을 통해 재반론을 요구했는데, 정목사는 신학적 토론을 거부하고 인신공격, 비방, 조롱, 근거없는 악의적인 이메일을 타 교단목회자들에게 발송하여, 교단의 명예훼손과 교단간의 화합을 깨려고 했던 악한 동기들에 대해 전혀 반성이나 회개의 늬우침이 없이 아직도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 정목사의 주장에 대해 실소를 금치 못하겠다.

  

정이철 목사의 주장 1.

김성로 목사가 기독교포털뉴스에 2016년 11월 2일 올린 반박문은 도저히 목회자의 글이라고 보기 어려운 글이었다. 김성로 목사가 ‘부활복음’을 주장하며 십자가를 폄훼한 것에 대해 전혀 반성이나 회개하는 마음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반론할 내용은 수없이 많지만 김성로 목사가 말한 몇 가지 사실만 지적하겠다.

 

이에 대한 반론

김성로목사가 부활복음을 주장하면서 십자가를 폄훼했다고 주장하는데 오히려 바른믿음 정이철목사가 김성로목사의 설교를 왜곡 편집하여 십자가를 무시하는 사악한 이단이라고 매도하지 않았는가? 

김성로목사는 십자가의 원 의미를 폄훼하거나 십자가를 무시한 적이 없다. 김성로목사는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누구인지 모르고, 십자가만 우상처럼 붙들고 있으면 구원이 없다고 한 설교자의 의도를 왜곡 편집하여 김성로목사가 십자가를 무시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필자나 김성로목사는 이 부분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했는데도, 여전히 같은 주장을 하는 정이철목사임을 볼 때에 정목사에게 어떤 숨은 의도가 있지나 않은지 몹시 우려스럽다. 어떤 저의가 있지 않고서야 이럴수가 없기 때문이다.   

정이철 목사는 몇일 전에 이런 말을 했다. “김성로 목사님이 가만히 있지 말고 입장표명을 해 준다면, 읽고 충분히 이해를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김성로 목사가 입장표명의 글을 올리자, 이해는 커녕 공연한 시비를 걸고 나오는 이유를 도저히 이해를 할 수 가 없다. 

그렇다면 오히려 정이철목사는 십자가를 강조한다는 명목 아래 부활을 십자가의 부속물 정도로 폄하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가? 

십자가와 부활의 중요성은 비교대상이 아니며 동전 양면 처럼 기독교 복음의 핵심사건이다. 하지만 정이철목사는 부활은 십자가의 열매, 즉 부속물로 약화시켜 버렸다. 

정이철 목사는 십자가에서 구속이 완성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반쪽 신학은 구속의 개념을 인간의 속죄에 국한한 편협적 시각에서 본 구속의 다양한 기능론적 관점을 이해하지 못한 편협적 신학의 결과이다. 

성경은 결코 십자가에서 인간의 구속이 완성되었다고 말씀하지 않는다. 필자의 견해로는 정이철목사는 Redemption(구속) 개념과 ‘atonement’(속죄)의 개념을 혼동하고 있다고 사료된다. 십자가에서 인간의 죄를 단번에  이루신 것은 속죄(atonement)이다. 그리고 속죄의 속전(Ransom:몸값)은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의 몸(피)을 보상의 기초로 한다.  

정이철목사의 주장처럼 십자가에서 이루신 속죄사역이(atonement) 인간의 구속 (Redemption)의 완성이며, 부활은 십자가 대속의 완성의 결과이며, 열매 즉 부속물로 주장하는 것은 결코 성경신학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 없다. 십자가와 부활은 동전 양면처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지만 구속의 기능적인 관점에서 역할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원래 구속의 개념은 상업적인 용어로 사용되었지만, 신약에서 구속의 개념을 몸 값의 개념을 포함하게 된다.(롬 3:24, 고전 6:20, 갈 3:13) 즉 구속(Redemption)이라는 개념은 죄의 종노릇으로 부터 구원해 내어 완전한 자유로 해방시켜 준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리고 이 자유는 그리스도안에서 만이 가능하다. 정이철 목사와 바른믿음 측은 정상적인 신학자들의 ‘부활이 구속의 완성’이라는 표현은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미진한 구속을 완성시킨다는 의미가 아니라, 마지막 때의 성도들의 부활과 관련하여 종말론적 의미에서 사용한 표현들이다라고 주장한다. 부활이 성도들의 부활과 관련한 종말론적 의미에서만 사용된 표현들이라고 하는 주장은 부활의 가치를 모르는 신학적적으로 무지한 주장임을 보게 된다.

루이스 벌콥(Berkhof)은 “더욱 중요한 일은 구조상의 한 요소인 부활을 구속사역의 핵심, 나아가 복음의 핵심으로 삼는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브루스 밀른은 “부활 사건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사실상 그의 아들의 제사장적 사역에 대해 '아멘'을 공표하신 것이다.(고후1:20) 진정한 구속이 성취되었으며. 따라서 의와 화목과 자유가 죄인들에게 진정으로 주어졌다.(롬4:25) 더욱이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혈과 육에 속한 연약한 인간을 저주와 진노와 모든 악의 공격으로 부터 보호하시고 도리어 견실하게 해주신 사실을 본다. 부활은 그의 왕적 사역을 나타낸다. 부활은 그의 미래의 통치에 대한 약속을 구현시키는 사건이다.”(조직신학개론 181~183쪽 크리스챤다이제스트)

"사도적 기독교의 중심은 십자가에 못박히심. 부활인 것이다. 십자가에 못박히심만으로도 아니고 부활만으로도 아니며, 또한 전주로서의 십자가에 못박히심이나 마무리 연주로서의 부활이 아니라 복음에 실제적인 만큼 세상에 도전이 되는 그러한 방식에서 두 가지의 종합인 것이다"(Resurrection of Christ, p.19).

총신대 신약학 교수인 한천설교수는 “실제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라는 이중적 관점은 바울 사도의 모든 관점에 반영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결코 분리할 수 없는 사건으로 죽음이 없으면 부활이 없고, 부활이 없으면 죽음의 의미가 상실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의 구원에 있어서 죽음 못지 않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데, 바울에게 있어서 부활은 구속의 완성, 구속의 종결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대칭시켜서는 되지 않지만, 구속의 완성은 그리스도의 죽으심보다는 부활을 통하여 더 결정적으로 성취된 것이다. 이것이 17절에서 바울이 성도의 구원과 관계하여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동시에 강조하는 이유인 것이다.” [Reference] : 그리스도의노예,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하셨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에 있다.

정이철목사의 주장은 속죄와 구속개념에 대한 신학적 무지에서 나온 반 구속적 편협적 신학사상이라 사료된다. 이에 대해 정이철목사는 공식적인 변론을 해야 할 것이다.  (차후에 정이철목사가 왜 반구속적 사상인지 자세히 변론하도록 하겠다. 지면상 다음으로 미룰 뿐이다. 

 

정이철목사의 주장 2. 

“본인은 26여년 목회하면서 침례교 신학과 신앙에 기초한 목회를 하였다고 자부합니다. 본인은 혹자들이 말하는 이단적인 사상을 가르친 적이 없고, 정통신학을 부정한 적도, 십자가의 영원한 속죄를 부정한 적도 전혀 없습니다.”(김성로, 춘천한마음교회 김성로 목사의 입장, 기독교포털뉴스, 2016.11.2)

김성로 목사는 마치 자신이 침례교단의 신학과 신앙에 합당하게 목회를 모범적으로 해 온 것처럼 말하면서, 침례교단의 울타리 속으로 들어가 집단 간의 대결구도를 만들어 보고 싶은 의중을 비추는 듯하다. 김성로 목사는 자신이 침례교 목사로서 이단사상을 가르친 적이 없고, 정통신학을 부정한 적도 없고, 십자가의 영원한 속죄를 부정한 적도 없다고 주장한다. 침례교단의 신학과 신앙에 기초한 목회를 하였다고 자부한다니 다음과 같이 묻고 싶다. 

“고린도전서 15장 17절이 여기서 풀리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성막이 있다는 이 부분, 거기서 제사를 지내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땅의 염소와 짐승의 피로 드리는 순간적인 효력뿐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대제사장이 되어 하늘의 성소에 단번에 들어가신 줄 믿습니다. 그래 주어야 영원한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죄가 없는 천국에 그게(참 장막)있을 리가 없잖아요. 왜 거기에 성막이 있냐구요?

제가 이것을 이야기하니까 (사람들이) 무슨 말인지 몰라요. 왜냐하면 십자가에 딱 붙들려 있으니까 ...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면 죄가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부활하셔야 할 이유가 여러가지 있지만, 부활하여서 하늘나라 참 장막에 들어가셔서 영원한 제사가 드려져야할 줄로 믿습니다 ...(중략)

이 분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셔서 하늘나라 성막에 들어가셔서 다시 제사를 드려주어야만, 이 땅의 제사는 순간적인 효력밖에는 없지만 ... 예수께서 부활하고 승천하셔서 하늘나라 성소에 들어가시게 되면 순간적인 죄사함이 아니라 영원한 죄사함이 이루어진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이게 놀라운 것입니다.”(김성로, 인터넷 영상 ‘부활복음세미나1’ 녹취, 2015년 

 

이에 대한 반론

정이철목사의 글의 특징은 자신의 주관적 견해를 독자들에게 설득시키기 위해 고의적으로 왜곡 주장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예를 들어 남침례교단이 정이철목사가 김성로목사를 약 1년 동안 사악한 이단이라고 단정하며 주장한 내용을 객관적으로 조사하겠다고 하자, 2016년 10월 31일자 기사로 “미 남침례교 정이철목사 표적삼아 긴급이대위 결성’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미 남침례교단이 아무 잘못 없는 정이철목사를 표적삼아 이대위를 결성했다고 왜곡 거짓 기사를 올렸고, 신학적 토론을 하는 필자에게 김성로 이단추종자라는 제목으로 바른믿음 사이트에 게제하였다. 

또 2016년 10월 21일  필자의 주일설교 두(2) 편을 you x(당신 x)라는 사용자 이름으로 14:34초로 편집하여 이단성이 있다는 이유로 유투브에 게제하였다. (필자의 주일설교에 이단성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지적해 주길 바란다.) 

이러한 정이철목사의 의도가 무엇인지 심히 궁금하다. 그리고 필자의 2014년 필자의 아내와 침례교 목사님들과 찍은 목사안수 사진을 이단 옹호자라는 제목으로 게제하여 초상권과 명예훼손을 자행하였고, 필자의 짧은 목회 경력을 비난하며 이런 사람을 위원장 자리에 세운 남침례교단 수준에 대해 비난하였다. 이처럼 정이철목사는 목회자라고 할 수 없는 비인격적인 방법과 기본적인 신학적 토론의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모습을 통해 성품과 인격을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미 남침례대책위는 그 동안 정이철목사의 일방적인 왜곡 편집된 글을 통해 남침례 안에서 김성로목사에 대한 많은 오해들이 생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남침례는 정이철목사만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김성로목사와 정이철목사의 주장들을 객관적으로 판단/조사하고 있고, 정이철목사의 주장대로 김성로목사가 사악한 이단인지에 조사하며, 조사과정에서 필자는 기독교 변증학적 관점과 개혁주의 성경신학적인 관점으로 정이철목사의 주관적이며 비신학적 사상들을 지적하며 5개의 반박문을 보내 신학적 토론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이철목사는 필자의 주장이 조직 신학적으로 수준이 낮다는 이유로 반론을 거부했고, 토론 과정속에 정이철목사는 남침례 및 타교단 목회자들에게 메일을 발송하여 “김성로 목사의 거액의 헌금을 받기도 한 미국 남침례교 한인총회 신학분과위원회에서 저에게 보복하고, 김성로 목사를 조사하기로 결의한 저의 소속 교단 예장합동에 대한 대응차원에서 긴급 이단대책위원회(위원장 이재위목사)를 결성했습니다.”라는 거짓 메일을 보내 본 교단의 명예를 훼손하고, 타 교단과의 분열을 초래했다. 

정이철 목사에게 묻고 싶은 것은 님의 이런 태도가 목회자로서 바른 자세인지? 

그리고 깊은 뉘우침과 회개가 있는지? 묻고 싶다. 

정이철목사의 태도로 본다면 자신이 어떤 잘못을 하고 있는지 전혀 인지를 못하고 있다고 사료된다. 

그리고 본 반론을 통해 정이철목사는 “김성로 목사는 마치 자신이 침례교단의 신학과 신앙에 합당하게 목회를 모범적으로 해 온 것처럼 말하면서, 침례교단의 울타리 속으로 들어가 집단 간의 대결구도를 만들어 보고 싶은 의중을 비추는 듯하다.”라고 극히 주관적인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다. 

그럼 침례교목사가 자신이 속한 교단 신학을 가지고 신학의 정체성을 피력하지, 타 교단의 신학을 가지고 피력하겠는가? 

정이철목사의 글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느낀 점 하나가 있다. 그것은 정이철 목사는 말꼬리를 하나 잡아 상대방의 의도를 왜곡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김성로목사가 집단간 대결구도를 만들고 있다는 뉘앙스를 심어줘 김성로목사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려고 하는 의도가 짙게 보인다. 도대체 그 저의가 무엇인가? 

그리고 정이철 목사가 평소 사용하는 단어들은 “대결구도, 표적삼아, 사악한, 보복등”이다. 이런 단어들은 교단간의 화합을 분열시키는 반사회적인 성향이 강한글들임을 보게 된다. 

상식적으로 미국에서 무교단으로 활동하는 정이철목사와 미 최대교단인 남침례교단과 집단간의 대결구도가 된다고 생각하는가? 

오히려 정이철목사는 자신이 한국에서 졸업한 학교의 선후배 인맥을 동원해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교단간의 대결구도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는가? 묻고 싶다. 

필자는 정이철목사에게 여러번 권면했듯이 정이철목사와 싸우려는 것이 아니라, 공개적인 건전한 신학적 토론을 통해서 오해가 있다면 풀고 부족한 신학적인 부분들이 있다면 배움을 통해 서로가 성장해 가는 그리스도인 다운 신학토론을 기대했었다. 그래서 인격적인 무시나 조롱은 삼가하고 객관적인 자료들을 통해 신학적인 토론만을 제의했는 데, 정이철목사는 오히려 피동공격적인 자세로 신학적 토론보다는 온갖 비방, 조롱으로 필자의 제안을 거절했다. 필자의 말이 틀렸는가? 

김성로목사의 ‘하늘 성소의 영원한 제사’에 대한 입장 표명 

김성로목사의 입장이다. "본인은 예수그리스도의 영원한 제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자신의 피로 드린 단 한 번의 제사이며 십자가와 하늘 성소의 제사는 따로따로가 아니라 한 사건, 한 제사라고 믿습니다. 따라서 십자가에서 드린 속죄제사가 온전한 제사임을 결코 부정하지 않으며, 십자가와 하늘성소에서 두 번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주장을 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영원한 제사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부활 후에 하늘성소에 들어가 속죄 제사를 드린다.”는 표현에서 속죄와 구속에 대한 용어적인 혼동이 있었으며, “부활 후에 성소에 들어갔다.”는 내용도 부활에 대한 시간적인 착오가 있었음을 인정합니다. 이로 인해 두 번 제사로 오해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 것 같습니다. 

따라서 기이협에서 제언한 대로 로마서 4장 25절, ‘그리스도는 우리의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십자가의 대속사건)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예수님의 부활사건)’는 말씀처럼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성취하신 속죄를 확증하심으로 우리를 의롭게 하신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제사와 하늘 성소의 제사가 따로 따로가 아니라 한 사건, 한 제사라고 믿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영원한 속죄 제사를 드리고 부활하심으로 구속의 완성을 이루었다고 믿습니다. 

본인의 저서 “하나님의 승부수 부활” 187쪽(26-27쪽 참조)에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있는 성막이 아닌 하늘나라 참 성막에서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활하셔야 하기 때문이다”는 표현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차후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드린 제사가 예수님의 영원한 제사라고 가르치도록 하겠습니다. 

본인은 십자가와 부활이 복음의 핵심이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서 9장 22절 말씀 같이 피 흘림이 없으면 사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인간의 죄를 용서할 수 없기에 십자가는 복음의 핵심 사건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십자가를 자랑하는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으면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고린도전서 15장 17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한 것은 부활이 전제된 것입니다. 이렇게 십자가와 부활은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크거나 중요하다는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같이 어느 것 하나도 없어서는 안 되는 복음의 핵심 사건이라고 믿습니다."

김성로목사는 이미 자신의 실수/잘못을 인정했고, 고쳤다. 목사들이 성경을 깊게 해석하다 보면 다른 관점으로 볼 때가 있고, 설교를 할 때에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렇지 않은가?  

물론 실수 없이 잘하는 분도 계신다. 설교에 실수/잘못하여 문제가 있다면 고치면 되는 사안이지, 이단으로 몰만한 사안은 아닌 것이다. 한국 교회 목사님들 중에 조직신학적으로 완벽하게 알고 설교하는 목사님들이 몇분이나 계실까? 김성로 목사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고치기도 하였고, 충분히 사과했다고 생각한다. 

반면 정이철목사는 자신의 실수와 잘못에 대해 사과했는가? 묻고 싶다. 

물론 자신의 신학적 문제가 무엇인지 모른다면 고칠 수 도 없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정이철 목사의 이단성은 17개나 된다는 사실이다. 이단규정에 해당되는 중요한 것임을 유념하기 바란다. 

그리스도 속죄 제사에 대한 신학적 견해 

참고로 하늘성소에 단번에 들어간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 사역에 있어 완전한 구속을 이룬 성취라고 보는 주석적인 견해이다. 

- John Murray [조직신학]  십자가 죽음과 하늘성소 입소까지가 단번에 드려진 구속제사의 한 과정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즉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십자가 죽음은 속죄사역(죄를 위하여 죽으심)이고, 부활은 구속사역의 성취라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물론 예수님이 다시 사는 것이 없다면 우리가 여전히 죄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이미 십자가에서 뿌려진 것입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은 이스라엘의 죄를 위하여 일년에 한번 지성소에 들어가는데, 그것이 곧 하늘성소이며, 지상의 성막은 그림자이지만, 하늘성소는 참 실체가 됩니다. 온 인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예수의 피가 바쳐졌는데, 그것으로 끝나면 안되고 하늘성소에 대제사장이 들어가야만 그 제사가 완성이 됩니다. 옛 언약의 성막은 하나님에 대한 제한적 접근과 제한 속죄의 불완전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새 언약의 완전한 접근과 완전한 속죄로 개혁될 필요가 있었는데, 예수그리스도께서 드디어 새 언약의 중보로 단번에 하늘 지성소로 들어가셔서 완전한 속죄를 이루셨다는 것이다(히브리서, 권성수, 총신대학교출판부, 263쪽)

마지막으로 “일년 일차씩” 지성소로 들어가도록 되어 있는 레위 대제사장과의 대조에서(9:7), 저자는 그리스도의 하늘 성소로의 입성을 “단번에”라는 에파팍스(ἐφἀπαξ)라는 단어로 수식한다. 그 용어는 반복의 필연성과 가능성을 배제한다(Stαhlin, TDNT 1:383-84).문맥에서 그리스도의 죽음, 승천, 그리고 하늘 성소로의 입성은 단일한 것으로 회고된다. 그러나 그 강조는 하늘 성소로의 도달과 영원한 구속의 성취에 있다.(WBC 히브리서-하, p.110) 

그는 지상의 장막에서 제사장적 직무를 수행한 것이 아니라(참조 9:1,7), 하늘의 성소에서(9:11-12,24) 그리한 것이다(9:11-12,24). 결과적으로 그는 하나님께 무제한적인 접근을 제공할 수 있었다(9:14; 참조 10:19-20). 천상 성소에서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적 희생과 사역의 효능이 8:1-4에서 주제적으로 먼저 도입된다.(WBC 히브리서-하, p.105)

 

- 메튜 헨리 주석은 예수님이 자신의 피를 들고 하늘에 들어가셨으며,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가 단번에 천국에 들어가셔서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다고 말한다.

우리의 대제사장인 그리스도는 구약시대의 대제사장이 소나 염소의 피를 들고 지성소에 들어간 것과는 달리 자신의 피를 들고 하늘에 들어 가셨다.우리의 대제사장은 단번에 천국에 들어가셔서 영원한 구속을 얻으셨다. (메튜헨리 주석 히 9:12)

희생의 제물 자체가 더 우월한 것이었다(26절). 율법 시대의 희생 제물은 각각 짐승의 생명과 피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희생은 그리스도 자신의 몸이었다. 즉 그는 자신의 피를 드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 피야말로 말할 수 없는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메튜헨리 주석) 

'단번에'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파 팍스'는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속죄사역의 특성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매년 반복되는 옛 언약의 구속 사역과는 달리 반복의 가능성이나 필요성이 없음을 시사한다(Morris, Lane). 한편 '성소'는 '지성소'를 가리키는 것으로(Hewitt) 본절에서는 지상의 장막이 아닌 하나님의 존전인 하늘 성소를 가리킨다(Lane, Bruce, Morris). 그리스도께서 속죄 사역을 성취하셔서 하늘 성소에 들어가심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완전한 성취를 시사한다(Lane). (호크마주석)

 

정이철목사 주장 3

첫째, 다른 침례교 목사님들은 김성로 목사처럼 십자가에 딱 붙들려 있으면 죄가 그대로 있고,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를 구원하였다고 가르쳤습니까? 다른 침례교 목사님들이 김성로 목사처럼 고전 15:17절을 풀면서 부활이 우리에게 죄 사함을 주고 구원을 주었다고 가르쳤습니까? 설마 김 목사님은 자신이 했던 말들, 부활이 우리에게 죄 사함을 주었다고 가르쳤던 것을 부정하시지는 못하시겠지요? 만일 자신이 했던 말이 생각나지 않으시면, 부활이 우리에게 죄 사함을 주었고, 그 이유는 부활하신 예수가 하늘에 올라가 영원한 제사를 드렸다고 설교한 본인의 말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에 대한 반론 

김성로목사가 좀 투박한 표현일 수 있지만 부활이 없이 십자가만 딱 붙들고 있다면 죄가 그대로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기독교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지 않는데 어떻게 구원이 있는가? 

 

오히려 정이철목사는 “부활을 몰라도 성령의 은혜로 십자가만 믿으면 구원이 있다는 발언은 심각한 반구속적 이단 사상인 것을 모르는가?   

고린도전서 15: 17의 성경신학적인 해석은 본절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두(2) 가지의 결과가 도출될 것이라고 언급한다. 

첫째는 고린도 교인들의 믿음도 헛것이 되고’ 

둘째는 ‘그들이 여전히 죄 가운데 있올 것’ 이란 점이다. 여기서 ‘헛되고’ 로 번역된 ‘마타이아'는 14절에 언급된 ‘헛것(케논)’보다 더 강한 뉘앙스를 전달한다. ‘케논’ 이 현실적인 것올 소유하지 못해 공허한 것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마타이아’ 는 미래의 삶을 보장할 수 없어 공허하다는 의미를 지닌다. 즉 고린도교인들의 믿음이 부활을 부정하는 것이라면 그들의 믿음은 그들을 죄에서부터 해방시켜 구원으로 이끄는 믿음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사실 고린도교인들이 전수받은 믿음이란 김성로목사가 그토록 강조하는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의 대상 자체가 허상이 된다면 믿음의 내용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죄 용서가 무효화되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 아니겠는가! 

이렇게 된다면 바울이 본절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을 경우 도출되는 두번째 결과로 제시한 바와 같이 결국 인간은 영원히 죄 가운데 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활 없는 십자가란 더 이상 ‘우리의 대속을 위한’ 십자가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 당시의 일부 고린도 교인들처럼 죽은 자의 몸의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죄인의 구속도 존재하지 않으며, 하나님과의 화해도 없으며, 생명도 구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에 다름이 없다. 

롬 4:25을 통해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 라”고 분명하게 언급한 바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을 의롭 다 여김을 받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한 사건이었다는 말이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지 못했다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대표 되신 그리스도께서 죄의 삯인 사망에게 영원히 패배하여 죽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되므로 여전히 그리스도인들의 죄의 빚은 탕감 받지 못한 상태로 존속하는 것이다. 즉 바울 자신이 고린도 교인들 가운데 전파한 복음의 내용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이고도 객관적인 부활 사건이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오히려 정이철목사는 역사적 부활사건의 중요성을 십자가의 열매, 즉 부속물로 축소 하는 것은 반구속적 편협적 신학사상이라고 사료된다. 

 

정이철목사 주장 4 

둘째, 다른 침례교 목사님들도 김성로 씨처럼 사람들에게 십자가가 우상이라고 하며, 십자가 우상에 사로잡혀서 부활을 보지 못한다고 가르쳤습니까? 다른 침례교 목사님들도 김성로 목사처럼 관심이 부활로 넘어가지 않고 십자가만을 붙드는 신앙을 가지면 부활에 이르지 못한다고 가르쳤습니까? 다른 침례교 목사님들도 김성로 목사처럼 세계 교회가 십자가에만 집중하고 있으므로 망해가고 있다고 가르쳤습니까?

“예수님 좌우편에 강도가 있었습니다. 다 죽었습니다. 관속에 집어넣었습니다. 막 섞어 놓았습니다. 바꾸어 놓았습니다. 여기서 예수를 찾으라면 찾겠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우상된 사람들에게는 부활을 이야기해도 무슨 말인지 몰라요.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고 ... (무덤의 시체들 속에서) 찾아보시라구요! 예수가 누구인지? 마귀가 십자가에만 초점을 딱 맞추어 주고 죽은 예수만 바라보게 해요. 예수님을 찾으려면 ... 부활하신 분이 예수님이신 줄 믿습니다! 그거지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우리는 살아야 하니까. 흔들리면 안 되는 것이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부활 후 승천하여 하늘나라 성막에 들어가서 죄를 온전히 사해주시고 이 분이 오신 것 아닙니까.”(김성로, 인터넷 영상 ‘십자가 우상’(2012년 달라스 뉴송교회 설교) 녹취)

다른 침례교 목사님들도 김성로 씨처럼 사람들에게 십자가가 우상이라고 하며, 십자가 우상에 사로잡혀서 부활을 보지 못한다고 가르쳤습니까? 다른 침례교 목사님들도 김성로 목사처럼 관심이 부활로 넘어가지 않고 십자가만을 붙드는 신앙을 가지면 부활에 이르지 못한다고 가르쳤습니까? 다른 침례교 목사님들도 김성로 목사처럼 세계 교회가 십자가에만 집중하고 있으므로 망해가고 있다고 가르쳤습니까? 

 

이에 대한 반론 

2012년 06월 24일 달라스 뉴송교회에서  김성로목사는 사도행전 17장 31절 ‘모든 사람이믿을 만한 증거 부활’ 설교를 필자가 들은 관점에서 기록하려고 한다. 김목사의 설교 핵심은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다는 것을 중심으로 설교한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셨는데 염려하고 근심할 필요가 없다. 이 사건은 구약성경에 예표된 사건이다. 이 세상 온 인류에게 죽었다 살아난다는 사실을 예언 한다. 그래서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믿을 수 있는 증거를 주셨다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인지할때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이 분을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이다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분을 10년동안 교회에서 증거한 복음이 이것이다 

맛디아를 뽑은 이유가 부활을 증거할 사람을 뽑았다. 살아계신 이 분을 증거하라는 것이다. 죽은 예수가 아니라 살아나신 예수를 증거하라. (죽으시고 삼일뒤에 부활 하신 예수를 증거하라는 표현)

김성로목사는 정이철목사처럼 왜곡되게 설교를 듣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것을  예상했는지 “제가 절대 십자가를 무시 하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전제한다.   

사도행전 전체는 부활을 증거할 사람을 뽑았고 살아나신 예수님을 증거했다는 것이다. 부활하심으로 우리 죄가 사함 받음을 믿을 수 있다. 내가 주인되어 살던 죄를 회개하고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확실한 증거를 통해 믿게 해 주어야 하는데 묻지마(그냥) 믿는 것이라고 한다면 청년들이 떠나는 것이다. 

신학교에서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증거가 뭐냐고 묻는데 부활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부활은 아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이다. 천국을 가보지 않고 어떻게 믿는가? 어떻게 하나님을 보지 않고 믿는가? 전능한 하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모든 사람들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다. 그런데 내 방법으로 믿으려고 했다. 부활은 모든 사람들이 믿을 만한 증거다. 

필자의 견해도 이천년 전 십자가는 참혹한 로마의 사형 형틀이다. 그런데 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는 존귀한가? 하나님의 아들이 죽은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누가 죽었는지 모르면서 십자가에 능력이 있는 것 처럼 붙잡는 것은 우상을 붙잡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김성로목사는 표현하는 것이다. 

김성로목사는 예수가 하나님이심의 증거를 설명하기 위해 표현한 질문에 대해 정이철목사는 관속에 집어넣었다는 표현으로 왜곡된 표현을 하고 있다. 고대 이스라엘 장례에 관이 어디 있는가? 

김성로목사의 질문이다. "골고다 언덕에 십자가가 세개가 꽂혔다. 누가 하나님이냐? 세개를 섞었다. 누가 하나님이냐? 부활하신 분이 하나님이다. 즉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증거는 가운데 달려 죽었기 때문이 아니라 부활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즉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는 방법은 전제적 믿음이 아니라 부활로 확증된 믿음이 되어야 한다는 표현이다. 필자는 설교자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했기 때문에 김성로목사가 예수님에 대해 신성모독을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필자의 경험으로도 성경공부를 통해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는다고 하는데 정작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증거가 무엇이냐고 질문하면 부활사건이라고 고백하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된다. 부활은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최고의 증거인데 부활의 의미를 모르고 신앙생활하는데 어떻게 능력있는 신앙생활 할 수 있겠는가? 

김성로목사의 설교의 결론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은 증거로 믿는데 그 증거가 부활사건이며 부활사건을 통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다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 천국, 죄사함을 확실히 믿을 수 있다는 주장이 김성로목사의 설교의 핵심인 것을 보게 된다. 

정이철목사께 질문하고 싶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가 하나님이심을 믿을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가 무엇인가? 피하지 말고 대답해 보기 바란다.  

J.P. 모어랜드(Moreland) 박사는 예수의 부활을 강력히 뒷받침하는 상황적 증거를 제시한다. 부활 사건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신앙으로 확증케 하는 지상 최고의 역사적 사건이다.라고 주장한다. 

얼라이언스 신학대학원에서 전도와 현대 사상 학과장을 역임한 재커라이어스의 박사는 왜 예수님을 유일한 길로 믿을 수 있는 첫번째 이유를 예수의 부활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부활사건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증했다. 부활이 사실이라면 예수의 신성에 반대되는 주장을 펴고 있는 다른 모든 종교체계는 진리일 수 없다. 그런데 예수의 부활에 관한 역사적 기록은 저항할 수 없을 만큼 설득력이 강하다. 인간의 운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반으로 한다. 그리고 부활은 그분의 신성을 확증한 사건이자 그분을 따르는 모든 이에게 천국 문을 열어준 사건이다. 

필자의 개인적 견해로 정이철목사는 Frame of reference(가치기준)에 의한 커뮤니케이션 왜곡현상으로 김성로목사의 설교의 전체 의도를 파악하지 않고 십자가를 우상으로 표현 했다고 십자가를 무시하는 사악한 이단이라고 정죄 매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김성로목사의 표현 중에 투박하고 오해의 소지가 있는 용어들이 있지만 설교자의 전체적인 의도를 파악한다며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이라고 사료된다.  

신학을 공부하고 나름 지성인이라고 하는 목사가 설교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자신의 가치 기준으로 사악한 이단이라고 정죄 매도하는 정이철목사의 태도가 오히려  놀라울 따름이다. 

물론 이천년 전에도 예수께서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자신의 신학적 기준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였다는 사실을 역사를 통해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의 주관적이고 편협적인 신학적 편견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정이철목사의 주장을 통해서 볼 수 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정상적인 신학을 공부한 개신교 목사 중에 누가 십자가의 사랑을  무시하겠는가? 

사실 반론할 가치가 없는 주장이다. 세상 사람들도 오해가 생기면 대화를 통해 풀고 이해하려고 하는데 필자는 정이철목사께 수 많은  반론들을 통해 김성로목사의 설교의 의도를 여러분 반복적으로 신학적인 관점과 기독교 변증론적인 관점으로 분명이 설명해 주었는데도 여전히 똑같은 주장들을 하는 이유가 이해력이 부족한 것 인가? 

아니면 의도적으로 김성로목사를 이단으로 매도하려는 것인가? 

정이철목사의 숨은 동기가 심히 궁금하다. 도대체 그 저의가 무엇인가? 

그리고 필자가 주장하는 정이철목사의 반 편협적 구속사상에 대한 반론을 필자와 독자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성경신학적인 근거와 권위있는 학술적 근거를 가지고 객관적으로 변론하길 부탁한다. 

그리고 필자가 보낸 5개의 반박문에 대한 재 반론을 다시 한번 정중히 부탁한다. 나머지 반박문은 지면관계상 차후에 반론하도록 하겠다. 

 

 

  이재위목사 / 미 남침례 대책위원회  

김문제  munjett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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